모든 소리가 먹혀 사라질 정도로 새하얗게 눈이 내린 어느 숲.
그 숲 안에서 조금 시끌한 소리가 나는 곳이 있었다. 누가봐도 이질적인, 바깥으로 뾰족하게 뻗은 목책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목책안에는 여러 막사가 쳐져있었는데 그 막사의 천과 깃발에는 장미덩쿨이 물들어 있었다. 장미가 상징하는 것은...성교회. 성교회기사단은 지금 마왕군 토벌을 위해 진을 쳐둔 것이었다.
타다닥. 타닥.
마왕군의 토벌이라는 살벌한 목표를 가진 군영이었지만 으레 어느 저녁 시간이 그렇듯 지펴진 모닥불 위의 솥에서 저어지는 수프처럼 여러 사람이 섞이며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에게는 최후의 만찬이 될지도 모르기에 내일을 잊으려 필사적인 노력일지도 모른다. 배식을 받고 주위를 둘러보는 청년이 있었다. 아직 앳된 얼굴의 갈색 고수머리 청년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팔을 크게 흔들었다.
"어! 용사님! 여기예요! 여기!"
여기저기에 놓여진 화톳불의 크기에 맞춰 모여 따뜻한 온기가 닿는 곳에서 배식을 기다리고 배식을 받고 배식을 먹는 사람들과 달리 청년에게 용사라고 불린 사람은 어떠한 불빛도 닿지 않는 곳에 희멀건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마치 군영 밖에 있는 눈이 쌓인 나무같았다. 그렇기에 아무런 반응이 없어 앳된 청년의 목소리가 닿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청년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향해 갔다.
"용사님은 저녁 식사 하지 않으시나요?"
"..."
자신에게 말을 거는 청년을 그제야 인지한 듯 용사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사람이 많죠. 내일 선봉에 서시려면 푹 쉬어두셔야 할 텐데! 제가 받은걸 드릴게요. 저는 다시 줄 서면 되니까요."
용사가 있는 곳은 모닥불들의 빛이 닿지 않아서인지 용사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알지 못하는 청년이 밝게 말했다. 청년은 용사를 가장 가까운 화톳불로 데려가 앉히고는 자신의 배식판을 쥐어줬다. 그러고는 아직 식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열로 뛰어갔다.
다른 무리와 달리 용사가 있는 모닥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는 다른 무리로 이동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든 말든 용사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마치 인형처럼.
용사의 몸은 모닥불을 쐬어 어느새 온기가 돌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손에 쥐어진 음식은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식어버렸다는 것을 제외하면. 용사는 자신의 옆에 누군가 앉고나서야 그 사실을 인지했다. 자신을 여기로 데려와준 청년이 돌아온 것이었다.
"아직 안드셨어요?! 저 기다려주신건가요? 그러면 조금... 쑥스러울지도. 그래도 그러면 음식이 다 식었을텐데... 제가 새로 받아온거랑 바꿀까요? 저 주세요."
"...왜 그러는거지?"
"아 저 이렇게 식은 것도 잘 먹어요. 이 정도면 감지덕지죠."
"아니. 나도 이정도면 됐다는 말이다."
"기다려주신데다가 따뜻한 식사를 저에게 양보해주시다니...! 정말 용사님은 용사님이세요!"
자신이 챙겨 앉혀준 자리에 그저 앉아 있었고 자신이 받아온 따뜻한 음식을 그 자신이 먹으라 했을 뿐인데 청년은 깊게 감동한 듯 했다. 그런 청년의 옆에 따라와 앉은 이가 진정시켰다.
"얌마! 용사님 귀찮게 하지 말라니까. 시끄러운거 싫어하신다고!"
"아뇨. 전 용사님이랑 먹을 겁니다. 어제도 같이 드셔주셨잖아요. 그쵸? 오늘도 같이 먹어요."
"...그럼, 내일도..."
너스레를 떠는 청년의 말에 무심코 대꾸해 버린 용사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흠칫 놀랐다. 청년도 그 단어의 무게를 알기에 잠깐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으나 그새 다시 밝게 대꾸해주는 청년이었다.
"내, 내일요? 하하하...살아 남으면요."
"..."
"아이고, 참! 농담이에요! 용사님이 계시는데 뭐가 걱정이겠어요."
자신은 궁핍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 이것보다 차갑고 묽은 수프도 감사히 먹었다며, 지금 자신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건 용사 덕분이라 하였다. 아마 나름 자신의 마을을 도와줬던 용사에 대한 동경이 있기에 그리했으리라. 이에 관련해서 매 식사 때 마다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호의만큼 용사는 속이 거북해졌다.
"미안하지만 먼저 일어나지."
"어? 식사 하나도 손대지 않으셨잖아요. 제가 너무 시끄러웠죠? 죄송합니다. 용사님도 어서 드세요."
"아니 나는 전투 전날에 식사를 되도록 하지 않아. 그러니 원한다면 그대가 들게."
"정말로 괜찮나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가보지."
용사는 자신이 떠나고 나서야 소란스럽게 취식하는 무리를 뒤로하고 자신의 군막으로 향했다.
어차피 내일 동이 틀 무렵부터 전투다. 그러니 굳이 내장을 채워둘 필요가 없었다.
사람의 몸에서 볼 수 있는 것 중에서 피와 내장보다 소화되던 중의 음식물만큼 역겨운 것이 없었다.
◈◈◈◈
타다닥 타닥.
성교회 기사단의 군영. 어제와 같은 장작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어제와 달랐다. 따뜻한 수프처럼 모두 어우러져 녹아들던 사람들 대신 붕대에 엉겨 붙은 핏덩어리처럼 가지각색의 사람들의 감정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동료를 잃음에 슬퍼하는 이.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는 이.
그리고 자신들과 함께하는 어떠한 존재에 대한 당혹감을 표하는 이.
용사는 오늘 평소와 달리 배식을 받아들었고 누군가를 찾는 듯 서있었다. 그렇게 잠시 뒤. 용사는 막 배식을 받은 갈색의 고수머리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대, 살아 남았군. 오늘도 함께 들겠나?"
"...아..."
"..."
용사가 말을 걸자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살갑게 굴던 청년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안색이 무엇을 말하는지 용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고, 용사님. 이녀석 오늘이 첫 출전이였던지라 쇼크를 받았나 봅니다. 제가 잘 달래서 내일도 출진하게 하겠습니다."
고수머리 청년의 옆에 있던, 그보다 경험 있는 병사가 용사에게 오늘 살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청년을 데리고 사람들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용사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식은 자신의 배식을 아무렇게 두고는 자신의 군막, 목책 너머의 숲으로 들어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홀로 있기 위해 독실로 마련된 군막에 있겠지만 용사는 그 천으로 둘러 감싸인 감각을 좋아하지 않았다. 용사라는 이유로 성교회와 기사단의 상징인 장미 덩굴이 그려진 군막이라니 그 안에 들어가면 가시가 돋은 덩쿨들이 자신을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최저한으로만 군막에 있으려 했다.
군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개울이 흘렀는데 용사는 그 옆에 걸터앉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살가웠던 신병은 오늘 전투에서 자신이 죽고 재생되는 모습에 질려버리고 만 것이라. 용사는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불사의 용사라 부르면서도 그 불사의 실체를 보면 거리를 두기 마련이었다. 이번도 그랬을 뿐이다.
단지 그 뿐.
용사는 사람이 많은 곳은 불편했다.
용사를 이루는 마력은 인간의 기도이자 욕망. 사람과 가까이 있을수록 그들의 본심이 더 크게 무겁게 몸을 짓누르고 갉아먹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건 내가 아직 용사의 역할을 빨리 완수하지 않아 내려지는 신벌이겠지... 하지만 나는 신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아니, 성스러운 신이 아닌 이단의 신, 사신이라면 느낀 적이 있었다.
네크로맨서, 사령 공주.
언젠가, 자신이 뱀파이어 무리를 소탕하여 인질을 구출했을 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피해자인 양 섞여 들여온 기만자.
처음 마주했던, 적어도 그녀가 자신을 비에라고 칭하며 소개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 때, 자신 안에서는 그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단순히 살아남음에 감사하고 있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간혹 그런 자가 존재하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비에의 정체는 사령 공주.
인간이면서 마왕군의 간부의 자리를 차지한 간악한 악마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랄 리 없었다. 그런 존재와 마주하기에 찾아오는 고요. 그 잠시간의 적막이 용사라고 불리는 그에게는 너무 달았다. 그 잠깐의 고요를 찾아 용사는 사령 공주가 출전하는 곳이라면 홀몸으로라도 뛰어들게 되었다. 오히려 그게 편했다. 다른 성기사나 병사들과 함께하면 그들의 기도가 온 몸을 갉아먹는 듯했으니. 사령 공주가 다루는 사령 중 일부는 자신에게 짓눌려 토할 것 같은 무게의 기도를 올리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사령 공주가, 비에가 다루는 시체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사령은 네크로맨서와 연결되는 것.
적법한 신과 연결이 끊겨 죽은 것.
죽은 존재는 성검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곳에 살아있는 존재는 오직 사령 공주뿐.
그러나 그 사령 공주도 용사에게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죽음조차도.
반면, 어느 순간부터 용사에게는 바램이 생겼다.
자신이 베어 산산조각을 낸 해골들의 뼛조각을 수습하던 그녀가 눈물짓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죽었던 자.
이미 그들은 첫 번의 죽음을 기리는 이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절대적인 세상의 순리.
이를 기만하듯 네크로맨서는 재가 되었어야할 영혼을 움직이고 시체들은 다시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악령들의 지배자는 그들을 애틋하게 여기며 기려주었다.
나도 그날 죽었는데.
나는 오늘 죽었는데.
나는 내일도 죽을 텐데.
나를 위해서는 왜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
제발.
제발,제발.
제발,제발,제발.
제발,제발,제발,제발.
누군가...한명이라도...제발...
용사는 터져나오는 억울함과 함께 찾아온 섬광과 고통에 질끈 눈을 감았다. 하얗게 질린 듯 점멸하는 눈꺼풀에 그려지는 것은 성교회의 신상도 아닌 갈색머리에 보라빛 눈동자의 네크로맨서였다.
현재 사령 공주와 같은 수준의 사신의 가호를 받은 이가 없다 한다. 그야말로 사신의 적장녀.
만약...아주 만약...사신 대리인이라 불리는 그대라면...
나처럼 원치않은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존재가 마침내 끝을 맞이해 줬을 때,
그대는 이런 나같은 존재를 위해서도 울어 줄 수 있는가?
그럴 리가.
나는 오늘도 마왕군을 섬멸했다.
나는 내일도 마왕군을 섬멸할 것이다.
그 중엔 사령 공주의 사령들도 존재할 터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들을 긍휼히 여기는 사령 공주에게
죽여도 죽지 않으며 자신의 수족을 죽이는 자신은.
마침내 부서져 없어질 자신 같은 건 혐오스러울 게 분명했다.
미워.미워.미워.미워.미워.슬퍼.미워.
'나'도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닌데.
미워.슬퍼.슬퍼.미워.슬퍼.미워.미워.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어.
슬퍼.미워.슬퍼.미워.미워.슬퍼.슬퍼.
하지만 '나'는 사람으로 존재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가.
한참을 홀로 눈과 흙이 섞여 질척이는 바닥에서 헐떡이던 용사는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막사로 비척이며 돌아갔다. 용사의 막사 앞에 어떤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막사 안이 아니라 밖에서 다가오는 용사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모양이었다. 청년은 어제 있었던 일이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처음보는 광경에 압도되어 자신이 그러면 안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도 용사님 덕분에 살았으니 앞으로 자신도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개울의 물을 뒤집어써 축 늘어진 걸음걸이의 용사를 걱정했다.
"괜찮아... 수면 부족도... 감기도 죽었다가 재생하면 없던 걸로 처리되니까."
자신의 걱정에 돌아온 대꾸에 청년은 당혹감에 빠져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이 먼저 거부하였지만, 어제 저녁까지 자신과 이야기해주었던 용사는 남지 않은 듯한 모습에...그 누군지 모를 생경함에 청년은 부대 변경을 신청했고, 그날 저녁. 용사와 식사할 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쓰레기.
고아 새끼.
용사 후보생.
용사.로만 불리던 아무에게도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인형이 자신의 이름을 타인에게 알려준 건 이로부터 얼마 후의 이야기.
그 숲 안에서 조금 시끌한 소리가 나는 곳이 있었다. 누가봐도 이질적인, 바깥으로 뾰족하게 뻗은 목책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목책안에는 여러 막사가 쳐져있었는데 그 막사의 천과 깃발에는 장미덩쿨이 물들어 있었다. 장미가 상징하는 것은...성교회. 성교회기사단은 지금 마왕군 토벌을 위해 진을 쳐둔 것이었다.
타다닥. 타닥.
마왕군의 토벌이라는 살벌한 목표를 가진 군영이었지만 으레 어느 저녁 시간이 그렇듯 지펴진 모닥불 위의 솥에서 저어지는 수프처럼 여러 사람이 섞이며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에게는 최후의 만찬이 될지도 모르기에 내일을 잊으려 필사적인 노력일지도 모른다. 배식을 받고 주위를 둘러보는 청년이 있었다. 아직 앳된 얼굴의 갈색 고수머리 청년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팔을 크게 흔들었다.
"어! 용사님! 여기예요! 여기!"
여기저기에 놓여진 화톳불의 크기에 맞춰 모여 따뜻한 온기가 닿는 곳에서 배식을 기다리고 배식을 받고 배식을 먹는 사람들과 달리 청년에게 용사라고 불린 사람은 어떠한 불빛도 닿지 않는 곳에 희멀건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마치 군영 밖에 있는 눈이 쌓인 나무같았다. 그렇기에 아무런 반응이 없어 앳된 청년의 목소리가 닿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청년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향해 갔다.
"용사님은 저녁 식사 하지 않으시나요?"
"..."
자신에게 말을 거는 청년을 그제야 인지한 듯 용사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사람이 많죠. 내일 선봉에 서시려면 푹 쉬어두셔야 할 텐데! 제가 받은걸 드릴게요. 저는 다시 줄 서면 되니까요."
용사가 있는 곳은 모닥불들의 빛이 닿지 않아서인지 용사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알지 못하는 청년이 밝게 말했다. 청년은 용사를 가장 가까운 화톳불로 데려가 앉히고는 자신의 배식판을 쥐어줬다. 그러고는 아직 식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열로 뛰어갔다.
다른 무리와 달리 용사가 있는 모닥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는 다른 무리로 이동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든 말든 용사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마치 인형처럼.
용사의 몸은 모닥불을 쐬어 어느새 온기가 돌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손에 쥐어진 음식은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식어버렸다는 것을 제외하면. 용사는 자신의 옆에 누군가 앉고나서야 그 사실을 인지했다. 자신을 여기로 데려와준 청년이 돌아온 것이었다.
"아직 안드셨어요?! 저 기다려주신건가요? 그러면 조금... 쑥스러울지도. 그래도 그러면 음식이 다 식었을텐데... 제가 새로 받아온거랑 바꿀까요? 저 주세요."
"...왜 그러는거지?"
"아 저 이렇게 식은 것도 잘 먹어요. 이 정도면 감지덕지죠."
"아니. 나도 이정도면 됐다는 말이다."
"기다려주신데다가 따뜻한 식사를 저에게 양보해주시다니...! 정말 용사님은 용사님이세요!"
자신이 챙겨 앉혀준 자리에 그저 앉아 있었고 자신이 받아온 따뜻한 음식을 그 자신이 먹으라 했을 뿐인데 청년은 깊게 감동한 듯 했다. 그런 청년의 옆에 따라와 앉은 이가 진정시켰다.
"얌마! 용사님 귀찮게 하지 말라니까. 시끄러운거 싫어하신다고!"
"아뇨. 전 용사님이랑 먹을 겁니다. 어제도 같이 드셔주셨잖아요. 그쵸? 오늘도 같이 먹어요."
"...그럼, 내일도..."
너스레를 떠는 청년의 말에 무심코 대꾸해 버린 용사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흠칫 놀랐다. 청년도 그 단어의 무게를 알기에 잠깐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으나 그새 다시 밝게 대꾸해주는 청년이었다.
"내, 내일요? 하하하...살아 남으면요."
"..."
"아이고, 참! 농담이에요! 용사님이 계시는데 뭐가 걱정이겠어요."
자신은 궁핍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 이것보다 차갑고 묽은 수프도 감사히 먹었다며, 지금 자신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건 용사 덕분이라 하였다. 아마 나름 자신의 마을을 도와줬던 용사에 대한 동경이 있기에 그리했으리라. 이에 관련해서 매 식사 때 마다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호의만큼 용사는 속이 거북해졌다.
"미안하지만 먼저 일어나지."
"어? 식사 하나도 손대지 않으셨잖아요. 제가 너무 시끄러웠죠? 죄송합니다. 용사님도 어서 드세요."
"아니 나는 전투 전날에 식사를 되도록 하지 않아. 그러니 원한다면 그대가 들게."
"정말로 괜찮나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가보지."
용사는 자신이 떠나고 나서야 소란스럽게 취식하는 무리를 뒤로하고 자신의 군막으로 향했다.
어차피 내일 동이 틀 무렵부터 전투다. 그러니 굳이 내장을 채워둘 필요가 없었다.
사람의 몸에서 볼 수 있는 것 중에서 피와 내장보다 소화되던 중의 음식물만큼 역겨운 것이 없었다.
◈◈◈◈
타다닥 타닥.
성교회 기사단의 군영. 어제와 같은 장작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어제와 달랐다. 따뜻한 수프처럼 모두 어우러져 녹아들던 사람들 대신 붕대에 엉겨 붙은 핏덩어리처럼 가지각색의 사람들의 감정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동료를 잃음에 슬퍼하는 이.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는 이.
그리고 자신들과 함께하는 어떠한 존재에 대한 당혹감을 표하는 이.
용사는 오늘 평소와 달리 배식을 받아들었고 누군가를 찾는 듯 서있었다. 그렇게 잠시 뒤. 용사는 막 배식을 받은 갈색의 고수머리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대, 살아 남았군. 오늘도 함께 들겠나?"
"...아..."
"..."
용사가 말을 걸자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살갑게 굴던 청년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안색이 무엇을 말하는지 용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고, 용사님. 이녀석 오늘이 첫 출전이였던지라 쇼크를 받았나 봅니다. 제가 잘 달래서 내일도 출진하게 하겠습니다."
고수머리 청년의 옆에 있던, 그보다 경험 있는 병사가 용사에게 오늘 살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청년을 데리고 사람들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용사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식은 자신의 배식을 아무렇게 두고는 자신의 군막, 목책 너머의 숲으로 들어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홀로 있기 위해 독실로 마련된 군막에 있겠지만 용사는 그 천으로 둘러 감싸인 감각을 좋아하지 않았다. 용사라는 이유로 성교회와 기사단의 상징인 장미 덩굴이 그려진 군막이라니 그 안에 들어가면 가시가 돋은 덩쿨들이 자신을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최저한으로만 군막에 있으려 했다.
군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개울이 흘렀는데 용사는 그 옆에 걸터앉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살가웠던 신병은 오늘 전투에서 자신이 죽고 재생되는 모습에 질려버리고 만 것이라. 용사는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불사의 용사라 부르면서도 그 불사의 실체를 보면 거리를 두기 마련이었다. 이번도 그랬을 뿐이다.
단지 그 뿐.
용사는 사람이 많은 곳은 불편했다.
용사를 이루는 마력은 인간의 기도이자 욕망. 사람과 가까이 있을수록 그들의 본심이 더 크게 무겁게 몸을 짓누르고 갉아먹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건 내가 아직 용사의 역할을 빨리 완수하지 않아 내려지는 신벌이겠지... 하지만 나는 신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아니, 성스러운 신이 아닌 이단의 신, 사신이라면 느낀 적이 있었다.
네크로맨서, 사령 공주.
언젠가, 자신이 뱀파이어 무리를 소탕하여 인질을 구출했을 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피해자인 양 섞여 들여온 기만자.
처음 마주했던, 적어도 그녀가 자신을 비에라고 칭하며 소개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 때, 자신 안에서는 그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단순히 살아남음에 감사하고 있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간혹 그런 자가 존재하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비에의 정체는 사령 공주.
인간이면서 마왕군의 간부의 자리를 차지한 간악한 악마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랄 리 없었다. 그런 존재와 마주하기에 찾아오는 고요. 그 잠시간의 적막이 용사라고 불리는 그에게는 너무 달았다. 그 잠깐의 고요를 찾아 용사는 사령 공주가 출전하는 곳이라면 홀몸으로라도 뛰어들게 되었다. 오히려 그게 편했다. 다른 성기사나 병사들과 함께하면 그들의 기도가 온 몸을 갉아먹는 듯했으니. 사령 공주가 다루는 사령 중 일부는 자신에게 짓눌려 토할 것 같은 무게의 기도를 올리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사령 공주가, 비에가 다루는 시체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사령은 네크로맨서와 연결되는 것.
적법한 신과 연결이 끊겨 죽은 것.
죽은 존재는 성검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곳에 살아있는 존재는 오직 사령 공주뿐.
그러나 그 사령 공주도 용사에게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죽음조차도.
반면, 어느 순간부터 용사에게는 바램이 생겼다.
자신이 베어 산산조각을 낸 해골들의 뼛조각을 수습하던 그녀가 눈물짓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죽었던 자.
이미 그들은 첫 번의 죽음을 기리는 이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절대적인 세상의 순리.
이를 기만하듯 네크로맨서는 재가 되었어야할 영혼을 움직이고 시체들은 다시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악령들의 지배자는 그들을 애틋하게 여기며 기려주었다.
나와 저들이 다른 게 무엇이지...?
나도 그날 죽었는데.
나는 오늘 죽었는데.
나는 내일도 죽을 텐데.
나를 위해서는 왜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
제발.
제발,제발.
제발,제발,제발.
제발,제발,제발,제발.
누군가...한명이라도...제발...
용사는 터져나오는 억울함과 함께 찾아온 섬광과 고통에 질끈 눈을 감았다. 하얗게 질린 듯 점멸하는 눈꺼풀에 그려지는 것은 성교회의 신상도 아닌 갈색머리에 보라빛 눈동자의 네크로맨서였다.
현재 사령 공주와 같은 수준의 사신의 가호를 받은 이가 없다 한다. 그야말로 사신의 적장녀.
만약...아주 만약...사신 대리인이라 불리는 그대라면...
나처럼 원치않은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존재가 마침내 끝을 맞이해 줬을 때,
그대는 이런 나같은 존재를 위해서도 울어 줄 수 있는가?
그럴 리가.
나는 오늘도 마왕군을 섬멸했다.
나는 내일도 마왕군을 섬멸할 것이다.
그 중엔 사령 공주의 사령들도 존재할 터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들을 긍휼히 여기는 사령 공주에게
죽여도 죽지 않으며 자신의 수족을 죽이는 자신은.
마침내 부서져 없어질 자신 같은 건 혐오스러울 게 분명했다.
미워.미워.미워.미워.미워.슬퍼.미워.
'나'도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닌데.
미워.슬퍼.슬퍼.미워.슬퍼.미워.미워.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어.
슬퍼.미워.슬퍼.미워.미워.슬퍼.슬퍼.
하지만 '나'는 사람으로 존재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가.
한참을 홀로 눈과 흙이 섞여 질척이는 바닥에서 헐떡이던 용사는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막사로 비척이며 돌아갔다. 용사의 막사 앞에 어떤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막사 안이 아니라 밖에서 다가오는 용사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모양이었다. 청년은 어제 있었던 일이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처음보는 광경에 압도되어 자신이 그러면 안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도 용사님 덕분에 살았으니 앞으로 자신도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개울의 물을 뒤집어써 축 늘어진 걸음걸이의 용사를 걱정했다.
"괜찮아... 수면 부족도... 감기도 죽었다가 재생하면 없던 걸로 처리되니까."
자신의 걱정에 돌아온 대꾸에 청년은 당혹감에 빠져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이 먼저 거부하였지만, 어제 저녁까지 자신과 이야기해주었던 용사는 남지 않은 듯한 모습에...그 누군지 모를 생경함에 청년은 부대 변경을 신청했고, 그날 저녁. 용사와 식사할 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쓰레기.
고아 새끼.
용사 후보생.
용사.로만 불리던 아무에게도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인형이 자신의 이름을 타인에게 알려준 건 이로부터 얼마 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