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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몫

초하루.
아직 달도 깨어나지 않은 차갑고 깊은 어둠을 한 남자가 걷는다.
아이즈는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나라.
어둠과 한기가 쳐들어 오듯 몰려들었다. 마치 신정부군처럼.


'너무 안쪽 방을 받았나, 가기 번거롭단 말이지.'


어둠 속을 걷던 남자는 추위 때문인지 오른쪽 손을 목에 갖다 대며 속으로 불평을 토했다.

얼마전까지는 그 날의 성과를 쫑알쫑알 이야기해주던 아이가 있어 즐거웠던 길이 홀로 걸으니 지루하고 싫기만 했다. 그래도 그 길의 끝에, 굳게 닫힌 문을 열었을 때 자신을 반겨주는 한사람분의 온기와 불빛을 생각하면 못 갈 것도 없었다. 그러니 이 어둠과 추위를 잘 버텨낸다면 그 끝에 보답받을 수 있다. 자신이 그러하듯 아이즈도 그렇게 되기를. 답지 않은 감상을 품으며 그는 점점 차가워지는 발을 움직였다.


"...?"


하지만 이상했다.
항상 자신을 기다리던 불빛이 없다니? 느긋하게 복도를 걷던 그는 서둘러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달조차 숨어 불빛 한 점 없이 어두운 방.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내 느껴지는 한 사람 몫의 온기에 그는 안도했다. 본디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공부하며 기다리던 이가 오늘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단지 그뿐이었던 사건에 그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훈련이 힘들었나 보군. 날 놀라게 하다니 이제 제법 큰 것 같아?"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 그 잠이 옮은 듯했다. 그도 오늘은 드물게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 잠을 청했다.


*****

다음 날.
그다음 날.
그다음 다음날에도 계속되는 적막에 그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

오후의 훈련장.
심기가 불편한 그는 다른 병사들의 사격술 지도를 해주고 있는 이를 불러냈다.

"오오쿠라씨! 저에게 어떤 용건이 있으신가요?"


병사의 얼굴로 답하는 걸 보니 대견하면서도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오쿠라는 잠시 이리로 와볼까? 라고 말하며 손을 잡아끌고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다.


"유즈리하."
"네."
"여기서 문제. 내가 왜 불렀을까? 근래 상황을 종합해 해답을 내보도록."
"음...혹시 당천총에 관련 된 일인가요?"


자신에게 관련된 사항이 그뿐이라는 듯 즉답하는 유즈리하의 모습에 오오쿠라는 조금 목덜미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로 짜증을 낼 수 없지. 그는 상냥한 표정으로 다시 질문했다.


"요즘 매우 일찍 잠드는 듯한데, 훈련이 힘들어?"
"...아니요. 오오쿠라씨께서 배정해 주신 대로 저는 사격술 지원이 대부분이라 힘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별거 아닙니다."
"어서."


사근사근한 목소리지만 웃지 않는 눈빛에 유즈리하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며 결국 진실을 고하기로 했다.


"그게…. 제가 다른 주작대 분들의 훈련에 따라가려니 제가 부족함을 느껴 일찍 자고 있었어요."
"...?"


도대체 네가 부족한 게 무엇이냐는 듯 갸웃거리는 오오쿠라의 무언의 압박에 유즈리하는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남성분들은 약관의 나이를 넘겨서도 자라신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 저도 조금은…. 가능하지 않을까…? 아주 조금…. 기대했습니다."


유즈리하의 실토에 처음에는 무슨 소릴 하는가 했지만 이내 오오쿠라는 아까의 탐문은 어디 갔냐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마지막엔 눈가에 눈물까지 훔쳐냈다. 그런 모습에 유즈리하의 얼굴엔 홧홧하게 열이 올랐다. 자신도 너무 어리숙한 생각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웃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이다.


"하하. 뭐, 그런 고민이 있었군."
"...네. 이렇게 후방이 아니라 전투에서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하고 싶었어요."


이미 화승총이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지도해주고 있으며 당천총으로 충분한 성과를 내주고 있는 유즈리하가 그런 고민을 한다니. 기특하면서도 조금은 짐을 덜어주고 싶어 오오쿠라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몫이라는 데에 키는 중요치 않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들어는 가잖아요. 오오쿠라씨는 이런 고민 해보신 적 없을 거예요."


유즈리하의 작은 투정에 오오쿠라는 잠시 자신의 사촌 동생을 떠올렸다. 어떻게 이야기해 줘야 충분히 이해해 줄까. 이 완고한 녀석은... 오오쿠라는 오랜 소꿉친구이자 자랑스러운 부하이기도 한 연인에게 특별히 서비스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자신의 몫을 해낸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어? 가령...아키즈키씨도 키가 큰 편이시지. 그런데 전투 인원은 아니다. 그런다고 한 사람 몫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오오쿠라의 질문에 유즈리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칸자키씨...는 매우 훌륭한 아이즈의 지사지. 이건 넘어가지. 그럼...나는 어떻게 생각하지?"


"매우 훌륭하시다고 생각해요! 오오쿠라씨는 구라파에서 수학하고 오신 데다가 벌써 가로를 수행하고 계시고 주작대 또한 통솔하고 계시고…."


이대로 두면 끝없이 자신을 칭찬할 것이 분명해 오오쿠라는 유즈리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끊어냈다.


"사부로."


오오쿠라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유즈리하는 입을 다물었다.


"걱정하지 마. 사부로도 한 사람 몫을 하는 아이즈 사내이니 분명 살아 있을 거야."


위로아닌 위로에 유즈리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쿠라는 그런 유즈리하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서는 자신의 눈높이보다 아주 조금 높은 곳에 손을 뻗었다. 제 사촌 동생의 시선 언저리쯤에.


"흠. 사다키치 녀석은 이렇지만. 아직 멀었지. 마음만 앞서는 녀석이니까."


사다키치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유즈리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면이 있긴하죠."


그에 비해 토라노스케는... 라고 덧붙이며 오오쿠라는 유즈리하의 시선보다 조금 위로 상체를 숙였다.


"그 녀석은 조금만 더 다듬으면 훌륭히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다."
"...맞아요."


그리고 조금 더 상체를 숙여 유즈리하와 비슷한, 아니면 조금은 올려다보는 위치에서 멈추어 섰다.


"유즈리하. 너도 이미 훌륭히 한 사람의 몫, 아니 우리에게 그 이상을 해주고 있지."
"...감사합니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위로는 어느새 유즈리하에게 진중히 다가왔다.


"또."


...또? 라는 유즈리하의 되물음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이에게 입 맞추고 마주할 수 있다면 이미 충분히 한 사람 몫 아니겠어?"
"...?!?!!!?"


갑작스러운 상관, 아니 정을 나눈 이의 행동에 유즈리하는 입을 막고 비명을 질렀다.


*****

그렇게 그날 저녁.
조금씩 차오르는 하늘의 달에 복도는 은은한 빛이 스며들었다. 그 따스한 달빛에 오오쿠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이 길의 끝에 있을 보상을 향해.
아마 그 어떤 고난이 있어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 온기와 불빛을 향해.